2009년 01월 05일
자주국방 KFRX : 36
36 :
그날 밤. 지통실 한쪽의 TV에서는 케이블에서 일주일에 3번씩은 틀어주었을 영화가 지리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This is 월급쟁이이이이!"
"사장님! (주)페르시아™의 대자본이!"
"월급쟁이들이여! 아침은 빵우유라도 챙겨먹었는가?! 저녁은 야근하면서 먹는다!"
TV 앞 책상에는 전투복 차림에 단장완장,
아니 당직완장을 찬 설웅이 초코리더스다이제를 씹으며 삐딱하게 앉아있었다.
"으하함~ 이제 겨우 새벽 2시 반이야. 은근슬쩍 나까지 당직사령 근무에 넣을게 뭐람. 안 그래 당직부관?"
통신반 앞 상황대에 역시 당직완장을 차고 대기 중인 박 하사가 자신도 피곤과 카페인에 절은 눈을 한 채 대답했다.
"많이 피곤하신가봅니다."
"당연하지. 오늘 정비 때문에 할일도 많았는데 이럴 땐 '유도리'있게 좀 빼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군대다운 '일본말'까지 써가며 불만을 토로하는 설웅이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말복날 루트가 쳐들어왔을 때는 전투 끝나고도 화이트가 근무였었지.
상황 좀 봐주면 어디 덧나나."
"MSN은 피곤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걸 이해해주는 분들은 이 대대 내에도 몇 분 없지 않습니까.
기껏해야 정작과장님이나 김병장님 정도이지 말입니다."
"아저씨가 뭘 안다고. 챙겨주는 건 정작과장님 정도지."
설웅이 손가락에 묻은 과자부스러기를 전투복에 슥슥 닦고는 소령 계급장이 달린 전투모를 집어 들며 일어섰다.
"당직사령님. 어디가십니까?"
"잠깐 중대 순찰 좀 돌고 올게."
"알겠습니다."
설웅이 지통실을 나서자 흘끔 문 쪽을 돌아본 박 하사는 재빨리 인터콤을 붙잡고 전 중대본부에 연락했다.
"지금 당직사령님 올라가십니다. 각 중대 근무상태 점검해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 정비중대.
"맹웅!"
"어 그래 맹웅. 근무중 별 일 없…"
"정비중대 현재 취침중! 중대 취침인원보고! 총원!"
이등병 계급장의 불침번이 소령 계급장에 바짝 쫄아서는 막무가내로 인원보고를 하자 설웅이 아예 말을 잘라버렸다.
"됐어. 탈영자나 자살자 없지?"
군대에선 아주 흔하고도 웃기지도 않은 농담이었지만 초긴장상태의 이등병에게는 그게 농담으로 들릴 리가 없었다.
"트,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없으면 된 거야. 수고하라고. 간다."
"맹웅!"
"어이 김 이병. 남들 잠깨울 일 있어? 작게 해도 돼."
"잘 못 들었습니다?"
"…아냐. 그냥 수고해."
더 이상 붙들어봤자 '근무 서던 이등병 소령이 가혹행위 해 소원수리'같은 소리 나올까봐
대화를 포기한 채 각 생활관을 슬쩍슬쩍 들여다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으으, 때리지 마…"
'무슨 소리야?'
소리가 나는 곳이 다름 아닌 자신의 생활관, 그것도 익숙한 목소리이기에
설웅은 붉은 취침등 아래에 그늘진 생활관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때, 때리지 마…"
역시 김병장의 잠꼬대였다.
'음, 역시 분명해.'
설웅이 외모에 걸맞지 않게 뒷짐을 지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거봐 화이트. 맞은 게 맞다니까. 오죽하면 꿈까지 저렇게 꿀까."
설웅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가는 동안, 김병장은 새로운 잠꼬대를 하기 시작했다.
"흐흑, 아피아 선생님. 곰탱이가 때려요…"
꿈에서도 설웅에게 맞는 김병장이 유치원에 가서도 설웅한테 맞는 꿈을 꾸는 동안.
김병장 건너 건너 침대에서는 갑자기 꼬마애 그림자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크흑, 흑."
붉은 면에 흰색 레이스가 달린 잠옷차림의 염호가 갑자기 훌쩍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우아아아앙 장응언니이~"
"응? 호야 깼니? 왜 그래?"
부스스한 표정의 화이트가 재깍 일어나서는 염호를 끌어안으며 토닥였다.
"왜 그래. 호야 어디 아파?"
"어흑, 큷. 호야 꿈꿨어. 호야 무서워!"
"그래? 무슨 꿈인데."
양 볼을 발갛게 물들이고 훌쩍이는 염호가 눈물이 가득 고인 두 눈을 훔치며 대답했다.
"꿈에서 누가 호야보고 우리나라 끝에서 끝까지 큰물길 내래.
그래서 호야가 야삽으로 땅을 팠는데, 호야가 암만 파도 끝이 안 나!"
'이런…'
'큰물길 사업에 염호제의 공병 능력을 이용할지에 대한 검토'루머가 국방부내에 돌았던 게
염호의 국방망에 섞여 무의식으로 흘러들어갔던 모양이었다.
"괜찮아 호야. 그냥 꿈이야. 자, 어서 언니랑 자자."
애한테 '염호제가 굴착작업을 하면 그만큼 예산이 절감 돼 버리고, 그러면 건설회사에 쥐어줄 돈이 줄어들어서
그렇게 하진 않을 거야.' 라고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인 화이트가 염호를 다시 침대 위에 눕혔다.
"음냐리. 야 찌질이. 내가 언제 때렸다고…"
기상시를 앞두고 있는 시각.
명색이 대대 서열 3위의 설 소령은 지통실 데스크에서 팔베개를 한 채 대놓고 숙면 중이었다.
"지통실. 위병소입니다. 지금 PM차 올라갑니다."
"위병소. 지통실 확인했습니다. 당직사령님!"
"시집도 못가보고 여자 손에 꺾일 수는 없… 뭐? 뭐? 스팸차를 끓여?"
아무래도 악몽이었을 꿈에서 깨어난 설웅이 헛소리를 하며
벌게진 두 눈의 시선을 어디에 줄지 모르고 흐리멍덩하게 고개를 들었다.
"아야야… 거 아직도 욱신거리네."
붓기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턱을 어루만지며 김병장이 새벽 어스름을 소대원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부소대장님! 왔습니다!"
새벽 차가운 공기 속에서 PM 트레일러의 그르렁거리는 엔진소리가 점차 다가오기 시작했다.
"김 상병! 저쪽으로 유도하고! 김 일병은 저쪽에서! 최 하사! 정비고에 알려주고!"
정비중대 병사들이 졸린 눈을 부릅뜨고 경광봉으로 PM트럭들을
정비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하나하나 유도하기 시작했다.
"오라이! 오라이! 좀 더 왼쪽으로! 정지!"
정비고로 내려가는 장비 전용 엘리베이터 앞에 6대의 트레일러가 꽤 간격을 두고 나란히 멈춰 섰다.
"호로 벗겨라!"
차에서 내린 운전병과 정비중대원들이 트레일러의 화물을 덮고 있는 늑대소녀,
아니 방수포를 벗겨내자 육군 헬기용 위장무늬가 깔끔하게 칠해진 헬리콥터들이 차례로 드러났다.
"으으~ 드디어 왔구나 왔어~ 가자 의묘."
"네 아가씨."
"어디보자. 내 사랑스러운 애기. 오면서 흠집난건 아니겠지?"
"역시 아가씨도 제 생각뿐이시군요!"
[ 콰직 ]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피 대위가 헬멧으로 의묘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너 아침부터 맞을래?"
"이미 때리셨…"
"더 맞기 싫으면 후딱 올라타서 코어나 집어넣어!"
"예! 예!"
의묘가 하이칼라 머리가 망가지지 않게 요령껏 머리를 문지르며
재빨리 MHX-53에 올라타자 피 대위도 그 뒤를 따랐다.
신품 특유의 냄새가 가득한 헬기 조종석에 앉은 의묘가 시스템을 점검하며 말했다.
"MSN 코어 장착합니다."
의묘가 자신의 목에 걸고 있던 군번줄을 벗어서는
조종석에 군번줄을 끼워 넣을 수 있도록 된 사각 박스 안에 장착시켰다.
"KFRX III '의묘' 시스템 가동. 통제권 확보. 각 기 가동합니다."
"좋아. 이대로 변형해서 정비고 엘리베이터로 간다."
"KFRX III '의묘' 변형."
명령어가 입력되자 트레일러 위에 얹혀 있던 MHX-53이 디셉티콘 블랙아웃…이 아니라
18m 정도 되는 FRX로 변했고, 그 뒤를 따라 다른 기체들도 FRX의 형태로 변형되었다.
"80m 급이라고는 들었지만 FRX때도 꽤 작네."
현재까지의 FRX들 중에선 대형에 속하는 설웅제에 익숙한 김병장 앞을
전례 없는 소형 FRX가 쿵쿵거리며 지나갔다.
"음?"
병렬 복좌에서 공격헬기처럼 직렬 복좌로 변한 조종석 앞에 앉은 의묘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가씨. 기체 시스템 일부에서 소프트웨어적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그래? 뭐가 원인인데?"
"그게 아마 아가씨가 제 머리를 하도 때려서…"
"이게 자꾸 까불어?"
뒷좌석의 피 대위가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가 아니라 코어 장착 후 부팅할 때 뭔가 문제가 있었나봅니다. 자체 복구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럼 일단 기체부터 정비고에 넣고 하자고."
"예. 아가씨."
정비고 엘리베이터 위에 무릎앉아 자세로 멈춘 FRX 의묘가 천천히 땅 속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 언니 수고 많았어. 자리 깔아 놨으니까 얼른 자."
"아냐 화이트. 나 할일 있어."
"뭘 또 사고치려고?"
"화이트. 넌 네 언니가 사고뭉치로밖에 안보이냐?"
"응."
화이트가 주저 없이 긍정하자 설웅은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그래. 네가 이 언니의 혜한을 이해할 리 없지. 하지만 두고 보라고. 곧 나의 용단에 박수를 보낼 테니까."
"용단이 아니라 사단이겠지. 아무튼 피 대위 뒷조사를 하겠다 이거지?"
"쉿!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이야!"
설웅이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코에 대며 조용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이건 말하자면 내부 사정감찰이라고."
"글쎄. 내가 알기로는 이런 건 숙청이나 정적 제거라고 부르던 것 같던데. 뭐, 언니 좋을 대로 해.
난 호야 데리고 아침 먹으러 갈 테니까. 호야. 이제 일어나야지? 작은언니랑 밥 먹으러 가자."
"잉~ 호야 밥 먹기 싫어! 호야 아직 졸립단 말야~"
"뭐든지 때 맞춰서 움직이는 게 좋은 거야. 자, 착하지?"
화이트가 그때까지 침대 위에 옆으로 웅크린 채 복슬 거리는 9개의 꼬리로 온 몸을 덮고 있는
염호를 어르는 동안 설웅은 주먹을 불끈 쥐며 흰자위의 핏대를 더욱 세웠다.
"좋아! 반드시 내가 옳다는 걸 증명해주지! 원래 정의는 외로운 거야!"
그때부터 설웅의 짧은 스토킹이 시작되었다.
"좋아. 실낱같은 꼬투리, 아니 증거만 잡혀봐라. 그날로 헌병대다~"
"밥 다 먹었으면 가자. 언니. 여기서 밥도 안 먹고 뭐해?"
"응? 큰언니 안자? 눈이 호야 눈보다 더 빨개!"
"쉿! 나 지금 감찰하는 거 안보여? 조용해!"
광기에 가까운 설웅의 행동에 화이트는 팔짱을 끼고 무표정하게 바라봤다.
"음… 잠 안잘 거면 밥이라도 먹던가. 그러다 회로 나간다? 이거라도 먹어."
화이트가 설웅 앞에 250ml 군납용 우유를 하나 내려놓고 염호와 함께 식당을 빠져나가자
'방해꾼'이 사라진 설웅은 다시 건너 건너 식탁의 목표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밥 먹고 바로 그 오류 복구 들어가자고."
"예 아가씨."
"아가씨라고 부르지 말랬지 이 빠다야."
"하지만 저에겐 군대리아에 맛스타 포도잼을 발라먹어도 아가씨는 아가씨로밖에 안 보입니다. 그것도 아리따운…"
[ 따악 ]
피 대위가 이번에는 숟가락으로 의묘의 머리를 한대 내리쳤다.
"너 오늘 아침부터 꽤 도발적이다?"
"감사합니다. 역시 아가씨는 제 매력을 아십니다."
[ 따악 ]
"죽을래요?"
"죽어도 아가씨 품에서 죽는다면 더 없는 행운이…"
의묘는 순간 말을 멈췄다.
이번엔 피 대위가 '한마디만 더 하면 식판 모서리로 찍어버린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죠. 세상에나. 인생은 한번뿐이지 않습니까?"
"얍삽한 녀석."
"하아~ 바쁜데 일어나시죠? 제가 치우겠습니다."
자기가 무슨 기사+집사라도 되는 양 의묘가 식판 두개를 양 손에 들고 먼저 일어섰다.
"좋아. 피두나 대위 감찰일지. 아침식사중 MSN 의묘 중위 머리 2회 가격. 그리고 살해 위협. 게다가…"
설웅이 볼펜 반대쪽으로 자신의 입술을 몇 번 두드리다가 한줄 더 수첩에 적어 넣었다.
"배식으로 나온 쌀빵 두 개 중 하나는 안 먹고 버림. 명백한 군사예산 낭비."
정비고에 줄줄이 늘어선 헬기들을 김병장은 흥미로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이게 '의묘'구나. 좀 특이하네."
밖에서 정비고로 이동할 때 잠깐 들어났던 그 호리호리한 모습은 확실히
육중한 FRX들에 익숙한 그에게는 꽤나 신선한 느낌이었다.
그것도 18m의, 거의 FRX 설웅의 2/3 크기였으니 말이다.
"이 녀석은 FRX들 중에서는 FR에 제일 가까운 녀석이어서 그래."
"맹웅! 군의관님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아 뭐, 그럭저럭."
피 대위가 안경 너머 밤색 눈동자로 의묘를 째려보며 말했다.
"나의 친애하는 왓슨 덕분에 먹다가 얹힐 뻔 했지만."
피 대위가 자신의 부사수를 탓한 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특수전 및 지원용 FRX. KFRX III 의묘제. 그래서 헬리콥터라면 뭐 개발자가 밀덕후인거고. 그냥 그런 거야."
"루트의 부품을 썼다고 하는데 그래도 용케 현용기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야 아까데뷔나 탐이나, 하세과학이나 반죽음 같은 회사에서 PPL을 넣어주지."
피 대위는 원페에서 히엔 & 렛푸의 '피규어'가 상을 받았다는 것까지는 말하려다 말았다.
그런 건 아는 사람이나 알아먹는 소리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그 정도로도 '덕후'소리 듣기엔 충분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말이야 김병장…"
"예 군의관님… 커헉!"
피 대위가 고양이 같은 날렵한 몸짓으로 순식간에 김병장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누나라고 부르랬잖아 동생? 누나는 너무 딱딱한 건 싫다고~♥"
김병장은 막혀오는 숨과 아직 고통이 가시지 않은 턱. 그리고 오른쪽 눈앞으로 급격히 다가오는
'부풀어올라있는 근무복 가슴주머니'에 혼미해지려는 정신을 바로잡으며 간신히 대답했다.
"예, 예, 누나. 그러니까 이것 좀 놔주…"
"좋아. 봐줬다."
"케헥! 켈룩!"
피 대위가 생긋 웃으며 김병장의 목을 탁 놓자 김병장은 격한 기침을 하며 목을 잡고 털썩 주저앉았다.
"좋아! 다 봤어! 게다가 사진까지 찍었다고!"
설웅이 총과 함께 군인들의 제 2의 총이 된 디카를 들고는 K9 FRX의 뒤에서 희희낙락거리고 있었다.
"좋아! 의묘 폭행에 아저씨까지 폭행에다 성희롱! 호칭강요! 이거면 확실하다고! 제 아무리 대위라도 전출감이야!
전입자는 군의관? 웃기시네! 전출자는 군의관이다 뭐!"
"까꿍~ 우리 언니 뭐하시나?"
"꺄아아아아~"
불붙이지 않은 담배를 문 채 화이트가 등 뒤에서 얼굴을 불쑥 내밀자
설웅은 덧니난 송곳니를 드러내며 비명을 질렀다.
"화, 화이트! 언제 왔어?"
"글쎄. 아까 언니가 꿀단지 앞의 곰탱이 푸처럼 광기어린 표정으로 사진 찍을 때부터?"
"됐으니까 상관 마!"
"호오? 꼭 담배 피다 학생주임한테 들킨 여고생 같네? 도대체 무슨 사진을 찍은 거야? 형부의 불륜현장?"
"화이트 너까지! 그런 거 아냐! 드디어 증거를 잡았다고. 너도 봤지? 아저씨 폭행당하는 거 말이야.
이걸로 끝이야! 그동안 나와 아저씨가 당한 수모를 갚아주지!"
"흠…"
진심으로 기뻐하는 설웅을 진지하게 바라보던 화이트가 지포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언니, 우리 솔직히 까고 말하자."
"응?"
"그거 언니가 책임전가 하는 거잖아. 장난쳐서 일 터진 거 말이야."
"그런 거 아냐! 난 어디까지나 아저씨가 당하니까!"
"비겁한 변명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김병장은 언니한테 당한거지."
"난 장난친 거고 저쪽은 때린 거라니까! 차원이 달라!"
"글쎄, 그럴까?"
"맞아! 틀림없어!"
"뭐, 좋아. 궁극적인 판단은 언니한테 달린 거니까. 대신 하나만 물어볼게."
"뭘?"
화이트가 설웅의 보드라운 오른손목을 붙들더니 위장무늬 교복의 가슴팍에 올려놓으며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호야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일이지?"
"그, 그럼!"
가슴에 손을 올린 설웅은 조금 머뭇거리며 대답했지만, 화이트의 등 뒤에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으로
통순대간을 야금거리고 있는 호야가 눈에 띄자 점점 더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얇은 입술을 꼭 다문 채 바르르 떨던 설웅은 마침내 고개를 푹 수그리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래. 역시 내가 사과해야지. 젠장. 그놈의 맏언니가 뭔지."
"잘 생각했어. 그럼 어서 하라고."
"예, 예, 동생언니."
설웅이 축 처진 어깨로 피 대위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며 자리를 뜨자 화이트는 눈을 올려 뜨며 위를 쳐다보았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저기. 피 대위. 나랑 잠깐 이야기좀 해요."
갑자기 얼굴을 붉힌 채 나타난 설웅의 말에 피 대위와 김병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설 소령님. 우리 아가씨와의 면담을 원하신다면 먼저 저에게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의묘? 오늘부로 언 인스톨 당하고 싶냐?"
"아, 아닙니다 아가씨!"
"설웅? 무슨 일이야?"
"아저씨는 잠깐 빠져. 이건 나하고 피 대위 문제니까."
"그러니까 우리 아가씨와 말씀을 나누시고 싶으시면 저에게 스케줄 요청을… 우욱!"
피 대위가 자꾸 튀어나오려는 의묘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누르면서 나섰다.
"좋습니다. 차 한 잔 할 시간 정도는 있으니까요."
잠시 후, 의무실.
피 대위가 '손님'의 찻잔에 찻주전자에서 잘 우러나온 따뜻한 녹차를 따라주었다.
"차드십니까?"
"예? 예."
뭔가 기선제압당하고 있다는 느낌의 설웅은 자기보다 아래계급이지만
동시에 연상인 피 대위 앞에 약간 딱딱하게 굴었다.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요?"
그래도 완전한 계급상하는 아닌지라 '요'자가 오가는 대화 속에서 설웅이 부끄럽게 입을 열었다.
"먼젓번에 일 있잖아요. 그것 때문에 그러는데…"
"먼젓번? 아, 혹시 어제 일이요?"
"예, 그게 저기, 제가 그 일로 드릴 말씀이…"
"무슨 말씀을…"
그때였다. 대대의 모든 스피커가 사이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통실에서 전파합니다. 전투준비태세! 현재 데프콘 1. 콕키드 피스톨. 실제상황입니다!
다시 한 번 전파합니다. 전투준비태세! 데프콘 1. 콕키드 피스톨. 실제상황입니다!"
피 대위가 의자 등받이에 오른팔을 비스듬히 걸친 채 왼손 집게손가락으로 책상을 몇 번 두들겼다.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좀 있다가 하지요. 루트가 온 것 같군요."
"실전상황이다! KFRX 전기 출격태세!"
꼭두새벽부터 분주했던 정비고는 쉴 새도 없이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작은언니."
"응?"
FRX MLRS로 향하던 화이트를 염호가 불러 세웠다.
"작은언니. 그런데 아까 그 "올 때가 됐는데."는 무슨 이야기야?"
"아 그거?"
화이트가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아니, 이 글이 분량이 이쯤 되면 루트가 오더라고."
<계속>

매맞는 의묘가 불쌍하다가 1%. 맞을만 하다가 1%.
그리고 98%가
"저런 암호랑이라도 좋으니 미녀 의사 마누라 항가."
라고 답해주셨습니다.
이 셔터맨들아.
# by | 2009/01/05 08:41 | 크로와상 월드 | 트랙백 | 핑백(1)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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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중국의 나팔수와 홍콩의 용가리 땅나구가 안 나온 건...님하 얘네들 무시하남효?)
이번화 검열 필요할듯.(응?)
제 군시절이 떠오르던 OTL(간부는 적!)
(아 딱히 X두X냐때문라는건 아니라능~믿어달라능)
중간의 큰물길은 굉장히 시사적인듯 ㅇㅅㅇ...
그러니까 그 부분 검열 삭제 필...(야)
저런 암호랑이라도 좋으니 미녀 의사 마누라 항가2人
"호로 벗겨라!"
호로 벗.... 아 좀 놀란듯
저런 암호랑이라도 좋으니 미녀 의사 마누라 항가3人
http://pokoteng.egloos.com/2054332
http://pds12.egloos.com/pds/200809/10/27/d0029827_48c7b46607ebe.jpg
언제 또 이런 짓을 해 보고 싶어요.
의묘는 그게 낙입니다. 굴하지 않고 쳐맞는게. 한마디로 치킨 레이스죠. 내가 아가씨 손에 죽던지 아가씨가 내 마음을 받던지라는 식.(…)